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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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무는 법을 몰랐다. 다만 셔터를 누르는 순간, 바람이 멈추었다." Alma는 바람이다. 정해진 곳 없이 떠돌고, 예고 없이 도착하며,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세계의 골목과 해안선, 새벽 안개가 내려앉은 들판과 이름 모를 산길을 걸으며, 늘 같은 질문을 품고 다녔다 — 여기가, 머물고 싶은 곳인가. 수천 곳을 지나쳤다. 어떤 도시는 아름다웠고, 어떤 마을은 따뜻했다. 하지만 바람은 쉽게 머물지 못한다. 그래서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머물 수 없는 순간을 한 장의 사진으로 붙잡아두기 위해. 셔터를 누르는 찰나, 바람은 잠시 숨을 멈추고, 그 정지된 시간 속에 Alma의 기억이 새겨진다. Alma의 사진에는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떠난 자리, 누군가 있었던 흔적, 곧 사라질 빛이 있다. 빈 의자 위에 놓인 컵,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해질녘 부두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 렌즈는 언제나 부재하는 존재를 향한다. 촬영 방식도 바람과 닮았다. 삼각대를 세우지 않고, 조명을 꾸미지 않는다. 그 장소에 도착한 순간, 눈에 들어온 그대로를 찍는다. 계획 없이, 연출 없이, 오직 직감과 발걸음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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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기록
나는 누구인가.
바람인가, 나그네인가.
홍길동처럼 이곳저곳 나타났다 사라지는 자인가,
김선달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팔아넘기는 자인가,
아니면 오디세우스처럼 끝내 돌아갈 곳을 찾는 자인가.
나는 모른다.
다만 바람이 부는 쪽으로 걸었고,
바람이 멈추는 곳에서 셔터를 눌렀다.
어떤 날은 봉이 김선달이었다.
대동강 물을 팔 듯이
허공의 빛을 한 장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이것이 아침입니다" 하고.
"이것이 바다의 끝입니다" 하고.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을 붙잡아
네모난 프레임 안에 가두었다.
어떤 날은 홍길동이었다.
서울에 있다가 제주에 있고,
리스본의 골목에 있다가 나오시마의 해안에 있었다.
누가 "어디에 있느냐" 물으면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대답할 수밖에.
활빈당처럼 빼앗는 것은 없되,
지나간 자리마다 한 장의 사진을 두고 왔다.
어떤 날은 허생이었다.
빈 주머니에 카메라 하나 들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돌아올 날을 정하지 않았고,
도착할 곳도 정하지 않았다.
세상이라는 시장에서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만 주워 담았다 —
새벽의 고요, 비 갠 뒤의 냄새,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
그런데 가끔, 바람이 멈추는 곳이 있었다.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어떤 방.
석양이 돌담 위에 금빛을 흘리던 어떤 골목.
야자수가 바람에 흔들리는 어떤 해안.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홍길동이 아니었고,
김선달도 아니었다.
그저 머물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순간을 찍었다.
떠나야 하는 사람이
머물고 싶다고 고백하는 방식으로.
나의 사진은 풍경이 아니다.
발자국이다 — 이곳에 내가 있었다는.
연서이다 — 이곳을 사랑했다는.
약속이다 —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는.
나는 여전히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춘향을 찾아 헤매는 이몽룡인지,
달을 쫓아 산을 오르는 미치광이인지,
아니면 그저,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한 마리 바람인지.
다만 이것만은 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바람은 잠시 숨을 멈추고,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고백이 태어난다.
— Alma, 바람이 머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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